장진수 추모사업회준비위







1005-501-365992
(우리은행:부천노총)





오늘 :
9 / 14
어제 :
14 / 28
전체 :
420,577 / 4,817,267

70년대 고속 성장의 그늘로서 중소기업이 많아 노동법의 사각지역인 부천의 노동현장에도 87년 사회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많은 움직임이 동토에 싹트고 있었다.  1988년 초,  장기간에 걸친 경원세기노동쟁의는 지역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기업인들의 견제와 정부의 지원속에 교섭이 풀리지 않고 쟁의가 지속되면서 이번에도 역시 어렵겠구나하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었다.
 
이때 노동조합 집행부의 결의로 죽을 각오를 다짐하며 경인 고속도로의 길을 막고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쟁의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그 결과는 숨죽이며 지켜보던  부천지역의 많은 노동자와 근로 시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파급시켰으며  이를 신호탄으로 지역 노동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제일 선두에 장진수가 있었다.
 
당시 부천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노동조합의 위원장인 고인은 수천명의 조합원앞에서, 부천시민 운동장 광장에서, 경원세기 본사가 있던 서울역 광장에서  연대투쟁을 위한 다른 사업장과의 공동 집회의 현장에서 항상 함께 했다.  듬직한 표정과 탱크처럼 묵묵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 오른팔을 버쩍 들며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    "죽을 각오로 설 때 반드시 이긴다"  라고 외치는 모습은  억압과 설움으로 응어리진 많은 노동형제들에게는 묵직함과 든든함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1988년도 부천의 노동단체 모임에서 그는 경원세기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나는 부천지역금속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만났다. 그는 부천의 가장 큰 남성 위주의 금속노동조합위윈장으로 나는 부천의 여러 중소기업들 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서 만났지만 지역의 연대를 위해 부천노총을 민주화하고 활동적인 지역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부천지역사회의 민주화에 앞장서기를 주저치 않고 활동하면서 3년 이상을 동지로 가깝게 지내면서 함께 지역활동의 틀을 모색하여왔다. 
 
당시 변화하지 않으려는 노총지도부와 이를 변화시키려는 여러 위원장들간의 대립과 반목 속에서 인간적 신뢰와 기대 그리고 민노총과의 난마처럼 얽힌 고민과 번뇌 앞에서  이해가 엇갈려 올바른 방향선택을 하기가 어려울 때는  고민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강원도 촌놈의 모습으로 씩 웃으면서  "내가 책일 질께 그대로 밀어부쳐" 할 때는 자신을  불쏘시게로  만들어 기관차의 시동을 거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부천지역사회의  각종현안에 대해  사회적 참여와 정치적인 방향에 대해 모색하면서 고인은 부천노총의장으로 활동의 장을 확대하였고 본인은 지방자치제의 실현에 따른 부천시의원으로 진출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활동의 역할을 나누고 만남을 가졌으나 경원세기가 천안으로 이전하면서 가끔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이후에 부천의 노동조합 위원장 모임을 추진하는 고인를 보면서 그래도 여전히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실천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함과 존경심을 감추지 못하였는데  그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버릴 수가 없다.
 
 
2008년에 수 많은 촛불이 서울시청앞 광장을 채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20년전 부터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초를 만들 수 있도록 뜨거운 감동, 미래사회에 대한 믿음, 동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초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불소시게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어수선한 현시대에 촌놈의 마음으로, 원양배 탔을 때의 신참의 자세로, 철을 녹이고 붙이는 용접공의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을 견인해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한 시대의 거인이었다.
 
 
김일섭   (당시 부천지역금속노동조합 위원장, 전 부천시의원)
Copyright ⓒ1996, kimjy.net All rights reserved. Ver 1.0 designed by kim jun young
Designed By WebEngine.
추모위원 모집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