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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수를 회상하며...

2008.12.04 15:37

관리자 조회 수:12021

장진수를 회상하며  

  장 명 국 (내일신문 발행인)

 

21년 전 1987년에 우리는 만났다. 1987년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해였다. 6월 민주항쟁과 7ㆍ8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우리 국민과 노동자들이 승리를 경험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속에 있었다.

이 굴레를 깨는 데 앞장 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장진수였다. 그는 진짜 노동자였다. 투박한 말씨, 순박한 얼굴에 단호한 의지가 동료 노동자들을 매혹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서 남보다 일찍 출근하는 모범적인 노동자였다. 술도 조금 마시는 절제된 생활을 하여 가정으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모범적인 가장이기도 했다. 또한 인정이 많아 어려운 동료를 보면 가만있지 못하는 의협심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1987년 7월말 집중호우가 내리자 그는 부서원들과 함께 토론을 하여 수해를 당한 동료를 위한 모금을 결정했고, 휴가비가 나오는 날 퇴근시간에 잠시 전 부서원이 모여 모금 전달식도 가졌다.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또한 갖추고 있었다. 당시 장민석 노조 교육선전부장 등이 해고되자 결단을 하게 된다. 28일간의 노동조합 파업총회를 통해 해고자 복직 투쟁에 앞장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도자에 뽑혔다. 이 싸움에는 가족도 함께 했다. 이 경원세기 노조의 투쟁은 7ㆍ8월 노동자대투쟁의 금자탑 중 하나이다. 그는 연속해서 노조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노동운동이 그의 삶의 전부가 되어 갔다. 새 세상을 바라는, 새로운 삶의 모범을 보이는 그의 말과 행동은 많은 노동자들을 감동케 했다. 그는 생산직 노동자 뿐 아니라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새로운 노동자 상으로 각인되었다. 민주주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장위원장의 말과 행동 생각과 자세 그 자체였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경원세기가 부천에서 아산으로 이전할 때, 그리고 특히 아산에서 인원을 감축할 때, 그는 누구보다 뼈아픈 심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의 심장은 조금씩 나빠졌다. 그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조적 변화는 노동조합의 정치 참여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노총의 정치부장직을 열성적으로 수행했다.

단위사업장이나 지역 노조 지도자보다 전국 조직의 간부로서, 특히 정치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복잡했다. 복잡한 정치는 순수한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무쇠 같은 몸도 점차 쇠약해져 갔다. 누군들 그가 갑자기 쓰러지리라고 예상했을까.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눈물만 흘렸다. 그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우리와 헤어졌다. 그러나 헤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정신은 살아 있다. 그의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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