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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수 국장님 이 글을 올려야 할지 묻어두어야 할지 몇 번 생각하고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49일동안 이승에서 못다한 아쉬운 인연의 시간들을 마무리 한다지오. 지금 장국장님 이승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대화 나누겠습니다. 장국장님 처음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받고 철없이 노총에 기대 했던지라 어저께 같은데 오늘이 꼭 만15개월입니다. 15개월전 그따 장국장님과 저의 인연은 시작 되었지요. 보고대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에게 보고대회 날 잡아서 보고대회는 이렇게 한다라고 2번씩이나 만나서 모의 대회를 하고 또 사무국장은 이렇게 회의를 이끌고 진행한다고 하시면서 꼼꼼히 챙겨주셨지요. 목소리 높낮이, 끊고 맺는 부분 박수치는 부분 등의 많은 도움으로 성황리에 보고대회를 마쳤습니다.
장진수 국장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6년도는 그렇게 바라고 2007년도 2월에 뜻하지 않게 조합원이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당황한 나에게 유인물도 1, 2, 3차 특보로 준비해주시고 기사화도 해 주시고 기자회견도 준비과정에 해체되고 그렇게 우린 지나 갔습니다. 어느날 추운 겨울에 장진수 국장님이 또 다른 산별 식구들과 지역 식구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린 그때 긴밤 지새우며 우리 노동조합 현황 문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밤새워 토론 하였습니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투쟁, 투쟁, 투쟁으로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그 자리에서 모금까지 준비하며 정말 큰돈을 노동조합에 건내주셨습니다. 뜨거운 동지애를 가지면서 눈물로 답례했습니다. 우린 동지애를 맛 보았습니다. 그날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성남, 식품, 풀무원 노총간부 등 그 자리 이후에 우리는 양자로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수 없어서 양자를 보낼 듯이 우리 노동조합은 그 이후 서울지역 본부로 양자로 되었습니다. 그러든 어느날 5월초에 노총에서 미팅을 가지고 난 후에 장국장님과 우린 서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어 하면서도 필요로 하면서도 노동조합을 만든 제가 죄인 양 세월은 7개월이 그렇게 흘러 갔습니다. 11월 말경에 노총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책연대 명부 가져오라고 이때다 하는 생각에 제 마음을 비우고 노총에 갔습니다. 명부 전해주고 장 국장님, 최 차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서로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몇 칠후 11월 30일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통일밤 한다고. 그래서 조합원들, 저를 포함해서 6명이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장 국장님 뵙고 저와 술 한잔 하면서 금년 안에 밥 한 끼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이것이 장 국장님과 이별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장 국장님 도리켜보면 내가 장 국장님 가슴 일부분을 힘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욕심이 겠지만 장 국장님 입관식에 생전 모습 얼굴 뵙고 조금 편안합니다. 장 국장님 모든 시련 무거운 짐일랑 벗어버리고 편히 쉬십시오. 우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조금 늦게 갈 뿐이지...
장 국장님 7개월 동안 헤어져 있다가 이제 마음 비우고 동지 곁을 갈려고 하는데 동지가 떠나면 난 어떻게 누굴 믿고 그 곳을 가나 정붙일 사람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장 국장님 저승 가기 전에 꿈 속에 서도 만나면 우리 못다한 애기와 밥 한끼 술 한잔 합시다.
동지여..... 더러운 세상 잊으시구려. 좋은 세상에서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동지가 그립습니다. 동지가 소중했습니다. 가슴 시리도록. 동지를 가슴에 묻겠습니다. 장 진 수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허공 속에 헤매는 이름이여 장 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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